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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함과 엄숙함이 동시 존재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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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전DSLR-A200 | 1/25sec | F/3.5 | 18.0mm | ISO-800


지난 일요일 경동교회와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간에 교환 예배가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그저 언급만 했지만,(http://simglorious.tistory.com/587

이번에는 사진도 함께 올리니 눈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요.. 

우선 타교파간에 예전이나 예배가 교환해서 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같은 장로교 안에서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기독교에서도 아마 거의없는 것같기도 합니다.  


지난 2000년부터 대한성공회와 경동교회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교회안에서 연합하며 교류하고자 교환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재까지 13번째 교환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목사님/신부님이 상대방 교회에 가서 설교(강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 및 예식 전체가 교환되는 형식입니다. 경동교회는 교환예배 드리는 주일이 되면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장로교형식으로 모든 예배가 이루어지며, 같은 시각 경동교회에서는 성공회미사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특히 예전담당 하시는 분들도 함께 이동이 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분들은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성찬례DSLR-A200 | 1/30sec | F/3.5 | 18.0mm | ISO-800



성공회예전과 장로교예전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면 신앙고백부분이 다릅니다. 

성공회는 일반적으로 사도신경을 주일에 고백하지 않습니다.(사도신경은 보통 평일미사나 저녁미사에 사용합니다.) 

니케아신경을 고백합니다. 또한 성공회에서는 층계송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럽 성당이나 가톨릭 성당을 자세히 보면 설교대가 계단으로해서 일정부분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일반장로교회에서는 사회보는 곳과 설교하는 곳이 동일하기 때문에 층계송이 없습니다. 또한 별세자를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장로교는 이 기도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성공회예전에서는 미사 중요부분 마다 향을 피웁니다. 


성공회에는 성호를 긋는 의식과 축일 및 세례명이 있지만, 장로교는 이것이 없습니다. 성서도 다릅니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장로교에서는 보통 "개역개정판" 성서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동교회 같은 경우 "새번역" 성서를 씁니다. 그래서 같은 구절이라 하더라도 조금은 차이가 있습니다. 


성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회 같은 경우 성찬례할때 전병을 받을때 예수님의 성체, 잔을 받을때는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신부님께서 언급하시면 응답하면서 전병과 잔을 받습니다. 또한 잔 같은 경우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전병을 잔에 찍도록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성공회 방식을 선호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다르게 잔을 작은 잔에 마시기도 합니다. 



기도DSLR-A200 | 1/15sec | F/5.6 | 70.0mm | ISO-800


이렇게 주일 예배가 1시간 40분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편안하고, 모두가 평안하게 드리던 예배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자리가 더욱더 많이 생겨서 교류가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교파간에 연합운동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현재의 한국교회현실에서는 무척힘들어보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성공회주교좌 성당과 경동교회 간에 교환예배가 더 많이 전해져서 많은교회와 교단이 소통하는 바램입니다.



복음서 봉독DSLR-A200 | 1/20sec | F/5.6 | 35.0mm | ISO-800


*성공회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성공회 홈페이지를 알려 드립니다.


1. 대한성공회:http://www.skh.or.kr/

2. 서울주교좌성당:http://www.cathedral.or.kr/fr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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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 5D | 1/800sec | F/2.8 | 43.0mm | ISO-400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어떠한 생물도 죽음에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 죽음 앞에서는 강한 생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박테리아도 평등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게 주어진 것은 삶의 시작과 삶의 끝인 죽음이 아닐까?

 이 죽음 앞에서 모든 생명체는 자유로울 수 없는데, 2000여년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많은 이적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과 그 후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이야기 했다. 그 후 예수는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혔고, 3일후 부활하여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나타났고, 사람들 사이에 예수의 부활이 기록되었다. 과연 예수의 부활은 진짜인가? 아니면 신화일까? 그것이 전승되면서 믿음이 되고, 신앙이 되었을까?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죽음과 부활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부활이란 것은 죽음과도 연결 되어 있지만, 구원과도 연결 되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구원과 부활은 거의 동일시 되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다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들 중 기독교인들 상당수가 죽음에 두려워하는 것 반해, 무신론자(無神論者)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는 죽음 앞에서 태연하다는 것이다.(-『신이 없는 사회』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마음산책·16000) 그렇다면 이들의 믿음이 잘못인 것일까? 아니면 무엇이 이들을 두렵게 한 것일까?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죽음을 이긴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긴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목회자(또는 신학자)는 우리에게 부활의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과연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비()기독교인들의 삶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 것인가? 그저 비()그리스도인보다 좀더 기부를 많이 하고, 좀더 착하게 살아가며, 좀더 욕심을 덜 부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살아가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입으로 고백하고, 매주 교회나 성당에 가서 예배(또는 미사)를 드리며, 교회 내에서 활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지만,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말로 고백하지 않고, 교회 활동이나 예배를 참석하지 않고, 그저 일반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좀더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삶인가?

 

먼저 죽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입대를 앞둔 건장한 청년이 막연히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예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죽음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저 현재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는 지인과 친척가족들을 볼 수 없고, 이야기 할 수 없으며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죽음을 두렵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DSLR-A200 | 1/640sec | F/9.0 | 300.0mm | ISO-200

 

 죽음을 극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창세기 4:19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라고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두렵고 어렵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 뒤에 있는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심판이 이승의 삶을 기준으로 이승의 삶의 결과론적인 심판이기에 두려운 것이 아닐까? , 이승의 삶에서 하느님을 따르던 삶이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믿음이 죽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닐까? 최후의 심판은 있지만, 그 심판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재판처럼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일까? 우리는 그 심판에 대해 모른다. 다만 비유적인 언어로 세상의 재판처럼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부활을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체득(體得)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로 마음의 끌림에서 체득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의문과 답을 찾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평생이 될 수도 있고,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새롭게 다시 살아난다는 것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은 부활을 설교할 때에 육체의 부활을 설교하였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 목회자들이 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부활을 우리가 믿는다면, 조금은 유치하지 않는가? 예수의 부활은 전혀 새로운 부활이다. 예수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복음 24:13-35) 또한 열한제자에게 나타났을 때 그가 예수인지 믿지 못하였다. 대표적인 제자가 도마이다.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보고 나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복음 20:28)이라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현재 육체적인 부활이 아니라, 전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부활인 것이다. 그 부활을 믿으며, 그 부활을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더 나아가 언젠가 있을 죽음에 대하여 두렵지 않고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넘어지게 한 것으로부터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이다. 삶에서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많다. 쉽게는 육체적인 넘어짐이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영혼의 넘어짐이 있을 것이다.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육체적인 넘어짐에서 일어선다는 것보다는 영혼의 넘어짐에서 일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넘어짐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넘어짐은 쉽게 일어날 수도 없으며, 한번 넘어진 영혼은 비슷한 상황에서 더 쉽게 넘어진다.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영혼의 넘어짐으로부터 다시 일어나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게 그 상황을 이겨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일어난 영혼은 그 비슷한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그 역경을 이겨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그러한 역경을 이겨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상황에서 인간적인 지식이 아닌 하느님의 지혜를 통해서 그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지혜를 선택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인간적인 지식으로도 이 삶의 역경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삶의 역경을 벗어나는 속도가 많이 느릴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없이 그 상황을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또한 영혼의 아픔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겉모습은 괜찮아도. 영혼이 아픈 사람은 많다. 그러나 영혼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을 스스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할지라도, 때론 영혼의 아픔을 보듬어주기는 한계가 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픈 영혼의 넘어진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종교를 찾게 되고, 절대자의 힘을 찾게 된다. 예수의 부활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는 인간적인 한계 및 영혼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 한계를 이겨내게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경동교회 여해강좌 시간에 들었던 특강을 토대로 개인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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